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환한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묘한 눈빛이었다. 무언가를 갈구하면서도 거부하고 있었고 화려했지만 외로웠다. 그래서 더 유혹적이었다. 그 눈빛으로 김완선은 사치스러울만큼 아름다운 불빛 아래에서 몸을 흔들었다. 현대음율속에서 순간속에 보이는 그녀의 몸짓에 관객들은 마음을 빼앗겼고 김완선은 한국의 마돈나, 댄싱퀸이 되었다. 내가 채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의 일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니 내가 선명하게 그녀를 기억하는게 이상하겠지만 무대위의 김완선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모든것이 새로웠을 6, 7살 꼬마에게도 그녀는 특별한 새로움이었나보다. 그리고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던 그 해 그녀는 돌연히 은퇴를 했다.
다시 그녀를 볼 수있었던 건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던 해였다. 4년이란 세월동안 대만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녀는 우리가 기억하던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80년대 댄싱퀸의 모습이 아니었다. 동그란 선그라스를 쓰고 흔히 말하던 그 시절 신세대모습으로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당시 유행하던 빠른 템포의 하우스 댄스곡인 "탤런트"라는 노래였는데 은퇴 전 그녀의 명성만큼의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었으나 가요톱텐 상위권까지는 진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무대위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은 분명 김완선이었으나 김완선이 아니었다. 투투의 황혜영 같기도 했고 룰라의 김지현 같기도 한 그냥 90년대 신세대, 수많은 "그들" 중 한명이었다. 앙드레김에게 검은 턱시도를 입힌것 마냥 지금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그 후 SES와 핑클이 데뷔하고 엄정화가 배반의 장미로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한국의 마돈나, 댄싱퀸 김완선은 자신의 자리를 엄정화와 이효리에게 물려주고 쓸쓸하게 퇴장해야만 했다.
2000년대에 그녀가 다시 컴백을 했다고는 하나 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녀의 컴백은 별다른 이슈없이 밍숭맹숭 했던 것 같다. 그녀는 화려한 시절이 지나버린, 한물간 여가수가 되어 과거의 그녀 때문에 현재의 그녀를 불러주는 무대를 찾아 이제 더이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조명아래에서 노래를 불렀을 지도 모른다. 김완선은 그 즈음 누드집을 내기도 했다. 많은 여자연예인들이 누드집을 내던 시기라 그마저도 그리 뜨겁지 않았다. 말못할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김완선의 누드화보는 그녀 스스로가 이제는 더이상 핫하지 않은 한물가버린 여가수라는 걸 인정한 안타까운 인증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무릎팍도사에서 잊고 있던 그녀를 다시 만났다.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린 그녀였지만 그 모습은 그리 많이 변해있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풍기는 그 분위기가 내가 예전에 보았던 무대 위의 김완선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의 묘한 눈빛은 여전히 매혹적이였지만 그 안에 여유가 보였고 완벽할 것 같은 그녀의 성격은 의외로 허술한 면이 많은 맹한 누나같은 느낌도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수 많은 루머들과 굴곡 많았던 그녀 인생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80년대 후반 그리고 90년대 초 한국의 마돈나, 댄싱퀸가수 김완선의 삶을..
김완선은 화려한 여가수로서의 삶을 살았다. 대게 그 만큼의 화려한 시절을 보낸 스타들은 으레 그 스스로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또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한국의 마돈나로 추앙받던 어린 김완선과 그녀를 스타로 키워낸 자신의 친 이모이자 매니저였던 故 한백희씨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여자로 추앙받던 그 시절. 행복하지 못했던 그녀의 삶을. 7년간의 감금과 13년간의 착취. 사실 그녀는 착취라는 말을 사용하지않고 에둘러 말했지만 그것은 분명 착취였다. 김완선은 분노했어야 했는데 분노하지 않았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노라. 그 때 참 힘들었노라 이야기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을 숨기는게 철저히 훈련된 사람이기 때문인지 혹은 이제 정말 세월이지나 분노하고 분노하다 지쳐 그 응어리가 가라앉은 상태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눈물만을 훔치며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사실 난 그녀가 분노하며 펑펑우는것이 더 자연스러울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떤 형태든 그녀가 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많을 것이다. 언제나 방송은 한쪽 면과 일부분만을 보여줄 뿐 이니깐. 하지만 그녀가 홀로 차 안에서 공연순서를 대기하며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았을때 그 차창 밖으로 비친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가장 부러웠다는 그 말에 그녀가 얼마나 외로운 삶을 보냈는지 또 스스로 행복을 찾지 못했던 어리석은 사람이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친이모인 매니저가 골라준 옷을 입고 그녀가 받아온 노래를 부르고 또 그녀가 말해준대로 거짓은퇴를 했던 김완선은 삐에로 인형이 되었다. 정확한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故 한백희씨의 탓일 수도 있고 어린 김완선을 이모에게 맡겨버린 무책임한 그녀의 부모님의 탓일 수도 있고 또 팔과 다리가 피아노 줄에 묶여버린 삐에로 인형이 되고서도 스스로 그 줄을 끊지못했던 그녀 탓 일수도 있다. 어쩌면 연예인의 숙명이라지만 서글픈건 어쩔 수 없다.
김완선이 컴백한다. 김완선이라는 이름만 빼면 43살의 여자 댄스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릎팍에서 유세윤이 농담으로 던진 말이였지만 정말로 그녀는 엄정화와 이효리를 비롯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여자댄스가수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녀가 어떤 음악을 들고 대중 앞에 설지도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유행을 따라가는 댄스곡보다는 그녀의 천성적으로 야한 목소리가 무척 어울릴것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난 그녀가 이제 대중들의 인기와 상관없이 무대위에서 노래하며 누구보다도 신나고 자유롭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것이 그녀 자신에게도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 아닐까. 이제 더이상 김완선은 삐에로가 아니다. 그녀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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